AI는 하루만 놓쳐도 밀린 기분이 드는 분야다.
새 모델, 새 논문, 새 도구. 따라가야 한다는 건 알았다. 문제는 따라가기가 언제나 별도의 할 일이었다는 것이다.
뉴스레터는 메일함에서 잠들었고, 북마크는 나중에 읽기라는 이름의 무덤이 됐다. 몇 번 실패하고 나서 결론을 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자리의 문제다.
이미 지나가는 길
나에게는 하루에도 여러 번 여는 화면이 하나 있다. 여러 프로젝트의 상태를 모아 보여주는 작업실 전광판이다. 어차피 지금 뭘 해야 하는지 확인하러 계속 들어간다.
거기에 AI 탭을 하나 붙였다.
논문, 연구소 블로그, 모델과 코드 릴리스, 뉴스레터, 커뮤니티. 소스별로 분류된 아티클이 제목과 한 줄 요약으로 흐른다. 프로젝트 상태를 보러 들어왔다가 지나가는 길에 제목을 훑고, 끌리는 게 있으면 연다.
새로운 시간을 만들지 않았다. 이미 지나가는 길 위에 놓았을 뿐이다.
습관을 만들려 할 때 우리는 대개 결심을 먼저 한다. 그런데 결심은 바쁜 날 가장 먼저 사라지는 자원이다. 결심이 필요 없는 자리에 놓으면 결심이 사라져도 행동은 남는다.
매일 도는 것은 가벼워야 한다
만들면서 몇 가지를 정했다.
첫째, 화면은 기다리지 않는다. 전광판은 몇 초마다 갱신되는데, 그 화면이 외부 사이트의 응답을 기다리게 두면 안 된다. 수집기가 따로 돌면서 캐시에 담고 화면은 캐시만 읽는다. 바깥이 죽어도 화면은 멀쩡하다.
둘째, 요약에 AI를 쓰지 않는다. 아티클마다 AI 요약을 붙일까 잠깐 생각하다 접었다. 피드가 주는 설명을 정제하면 충분했고, 매일 도는 파이프라인에 AI를 넣는 순간 비용과 키와 지연이 함께 들어온다.
매일 도는 것은 가벼워야 오래 돈다. 무거운 자동화는 대개 몇 주를 못 넘긴다.
셋째, 안 되는 것도 기록한다. RSS를 제공하지 않는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 유명한 연구소 중에도 피드가 없는 곳이 있었고, 그런 확인 결과를 언제 시도했고 왜 실패했는지와 함께 남겨뒀다. 미래의 내가 같은 길을 다시 걷지 않도록.
실패한 시도의 기록은 성공한 결과보다 자주 도움이 된다.
소스를 고르는 일
읽다 보면 소스에 대한 감이 생긴다. 이 블로그는 매번 좋고 저 피드는 소음이 많다.
그래서 소스를 더하고 빼고 끄는 걸 화면에서 바로 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소스를 다듬는 일 자체가 하나의 습관이 됐다.
무엇을 읽을지 고르는 것은 결국 무엇을 생각할지 고르는 일이다. 정보를 많이 받는 것보다 무엇을 받지 않을지 정하는 쪽이 어렵고, 아마 더 중요하다.
몇 주 뒤
부채감이 사라진 게 가장 큰 변화다. 매일 지나가는 길에서 제목은 전부 스치니 큰 흐름을 놓칠 걱정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깊게 읽을 것만 고른다.
읽은 것이 실행으로 옮겨지는 속도도 빨라졌다. 화면에서 본 도구를 그날 프로젝트에 붙여본 적이 여러 번이다. 정보가 들어오는 곳과 일이 놓인 곳이 같은 화면에 있으면 그렇게 된다.
전광판이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보여주는 화면이라면, AI 탭은 거기에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를 겹쳐 놓은 셈이다.
남는 질문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다. 부족했던 건 마음이 아니라 구조였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환경을 바꿔서 얻은 습관은 얼마나 내 것일까. 화면을 치우면 그 습관도 같이 사라지지 않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의지로 버티는 습관보다 구조에 기대는 습관이 오래가고, 오래가는 쪽이 결국 나를 더 많이 바꾼다.
루틴을 고친다는 건 나를 다그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지나는 길을 다시 놓는 일에 가깝다.